최근 서울국제도서전의 열기가 정말 뜨겁습니다.
2024년에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으로 화제가 된 데 이어서, 곧 시작되는 2025년 행사에 관한 관심도 아주 뜨겁습니다. 아마 2024년을 뛰어넘는 성과를 거두지 않을까 하는데요.
사실 아직도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완전하게 이해가 어렵습니다. 이를 해석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고, 과정에서 '텍스트힙'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하기도 했는데요. 분명 의미 있는 분석이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도서전 열풍과 정반대되는 한 가지 데이터를 설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도서전 열풍 & 역대 최저 독서율
서울국제도서전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2024년에는 15만 명을 돌파하며, 역대 최대 관람객을 기록했습니다. 당시에 입장 대기 시간이 1시간 이상 걸릴 정도로 북적였다고 하죠. 그리고 2025년. 아직 행사가 진행되기 전임에도 입장권이 완판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게다가 웃돈을 얹어 판매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도서전에 관한 관심이 정말 뜨겁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사건인데요. 하지만 이 현상을 지켜보다 보면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순되는 데이터 때문입니다.
바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독서율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종합독서율(종이책+전자책)은 43%로 2021년 대비 4.5% 포인트 하락하며 독서실태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연간 독서량도 성인 기준 4.5권으로, 역시 역대 최저 기록입니다.
출판업계 상황도 비슷합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2023년 도서 총매출은 전년 대비 4.7% 감소했고, 전국 서점 수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동네 서점들이 하나둘 문을 닫는 모습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도서전의 열풍은 어느 때보다 뜨겁지만, 독서율은 가장 낮고 동시에 서점들은 문을 닫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역설적인 상황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독서'의 정의가 바뀌고 있습니다
도서전 열풍과 독서율 하락 사이의 이 상당한 괴리를 이해하려면, '독서'와 '책'에 대한 우리의 정의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게임체인저는 역시 스마트폰입니다
흔히 '독서'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종이책을 펼쳐놓고 넘기며 읽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이유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종이책'이 가장 대중적이고 확실한 매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지금, 사람들의 콘텐츠 소비 패턴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 20분 남짓 영상으로 책을 요약해서 이해하고,
- 카드뉴스 형태로 책 내용을 파악하고,
- SNS 책 리뷰로 다른 생각 공유까지.
책을 소비하는 방식이 과거와는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이제 사람들의 손에는 종이책이 아니라 스마트폰이 들려있는 게 자연스러운 풍경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루 종일 '독서'하고 있습니다
독서의 정의는 '책이나 글을 읽는 행위'입니다.
독서하는 이유는 (1) 정보를 습득해서 기존 지식과 연결하고, (2) 논리적 추론과 분석으로 비판적인 사고를 개발하고, (3) 새로운 관점과 아이디어로 창의적인 사고를 촉진하기 위해서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의 손에 종이책 대신에 스마트폰이 들려있기는 하지만, 독서의 행위를 하지 않고 있는 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을 통해서 정말 다양하고 많은 양의 '독서'를 하고 있습니다.
- 전자책 & 오디오북
- SNS의 텍스트 콘텐츠
- 온라인 뉴스와 아티클
- 웹소설 & 웹툰
형식은 다르지만, 이 모든 활동이 분명 독서와 마찬가지 과정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독서를 안 하게 된 것이 아니라, '독서의 방법이 다양해졌다'라는 표현이 정확할 거 같습니다. 달라진 것은 독서의 '방법'과 '책'의 형식이고요.
더 이상 '독서 = 종이책 읽기'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물론 과연 이 방식이 진짜 독서와 같은 기능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독자들의 독서하는 '방식'이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새로운 독서 르네상스의 시작입니다
독서와 책의 정의를 바꿔본다면, 도서전의 폭발적인 인기와 역대 최저 수준의 독서율 사이에 벌어진 괴리가 조금은 이해됩니다.
독자들은 지금도 여전히 독서를 원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방법을 원하고 있습니다.
도서전 열풍은 최근 독자들이 전통적인 독서 형태를 넘어서 새로운 텍스트 문화에 참여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실제로 도서전에서 참가자들은 책을 사는 것만큼이나 작가와의 만남, 북토크 참여, 굿즈 구매, 포토존에서의 인증샷 촬영에 관심을 갖습니다. 이는 독서가 개인적 행위에서 사회적·문화적 활동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제 독자들은 독서를 체험하고 공유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독서 르네상스가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런 변화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요?
결론부터 말해서 작가(크리에이터)의 역할이 바뀌어야 합니다.
지적 욕구에 대한 갈망은 여전합니다
독자들의 지적 욕구에 대한 갈망(독서하고 있다는 만족감 & 이미지 메이킹까지)이 변함이 없다는 건 분명합니다. 여전히 성장하고 싶어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 합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좋은 스토리와 인사이트에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AI의 등장과 파괴적인 성장으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지식과 인사이트에 대한 욕구는 더욱 강해질 겁니다. 분명히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크고 확실한 영역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런 욕구를 '어떤 방식'으로 충족시켜 줄 것인가입니다.
독자들은 경험하고 싶어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책을 구매하는 건 정말 쉽고 편리합니다. 새벽 배송, 당일배송도 가능한 나라입니다. 아침 출근길에 구매해 두면, 나보다 먼저 집 앞에 도착해 있으니까요.
그런데 독자들은 굳이 힘들게 도서전에 모입니다. 게다가 추가로 입장료까지 내고요. 왜 그럴까요? 클릭 한 번이면 편하고 저렴하게 집에서 볼 수 있다는 건 모를 리가 없을 텐데요.
독서를 '경험'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독자들은 일방적인 수용자로 존재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자기 생각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또한 혼자 소비하는 것보다 함께 경험하고 공유하는 것을 선호하기도 합니다. SNS에 독서를 인증하는 행위가 이를 방증합니다. 과거처럼 종이책으로는 절대 해소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독서 문화를 함께 즐기는 커뮤니티인 도서전에 이렇게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것이죠.
따라서 독자들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능력이 새로운 경쟁력이 될 거라는 의미입니다. SNS를 통한 일상 공유, 소통과 독자의 질문에 대한 성실한 답변, 오프라인 만남까지 이어지는 관계 형성까지. 이 모든 것이 현재 시대에 작가(크리에이터)로 성공하기 위한 필수 요소가 되었습니다.
결국 콘텐츠 제작보다, 콘텐츠는 잘 파는 게 중요합니다
이제 작가와 크리에이터의 핵심 역량 중 하나는 '잘 파는 것'이 되었습니다.
많은 작가와 크리에이터들은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데 집중합니다. 물론 중요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이 중요해졌습니다. '잘 파는 능력'이 필요해진 것이죠.
잘 팔린 콘텐츠를 유심히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왜 이 책을 쓰게 되었고, 어떤 가치를 전달하고 싶은지와 같은 배경 스토리와 함께. 독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닌, 양방향 상호작용을 통해서 소통합니다.
더 이상 좋은 책(콘텐츠)을 만들어서 출간한 다음에, 단순히 이를 여기저기에 알린다고 해서 잘 팔리는 시대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책이 팔리는 콘텐츠가 되기 위해서는 이전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게 됐습니다.
변화한 독자의 욕구를 충족시켜 줘야 합니다.
2. 일방적인 수용이 아닌, 내 생각을 드러내고 싶다.
3. 독서하고 있다는 만족감 &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싶다.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건 1번만 충족시켜 줄 뿐입니다. 이제 팔리는 콘텐츠가 되기 위해서는 2, 3번을 어떻게 충족시켜 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중요하게 됐습니다.
결론적으로 '작가(크리에이터)'의 역할을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때입니다.
과연 앞으로 독서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이 물음의 답은 시대 상황에 따라 바뀔 겁니다. 하지만 여태껏 그래왔듯이 사람이 가진 본질적인 욕망과 니즈는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앞으로도 팔리는 콘텐츠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